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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대종회 성명:개혁정치가 정암 조광조 선생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 기사등록 2020-03-31 10: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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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 선생은 조선시대 유교적 이상 정치를 현실에 구현하려 현량과를 신설하고 도학정치의 실현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다양한 개혁을 시도하였다 

한양조씨대종회(漢陽趙氏大宗會, 회장 조호원)는 최근 조광조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에 대해 심히 우려를 표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성명을 발표하였다.

한양조(漢陽趙)씨 시조(始祖) 지수(之壽)의 10세손으로 조선 시대 개혁 정치가인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 선생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선생은 조선 시대 유교적 이상 정치를 현실에 구현하려 현량과를 신설하고 도학 정치의 실현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다양한 개혁을 시도하였다. 시대를 앞서간 개혁정책은 기묘사화로 비록 물거품 되었으나, 그가 꿈꾸었던 이상 사회는 이후 후학들에 의해 조선 사회에 구현되었다.

최근 선각 개혁정치가인 정암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부 세력이 있어서 이를 엄중히 경고하는 바이다. 일부 지각없는 정치가나 언론인들이 조국을 깎아내리기 위해, 개혁사상가인 정암을 폄하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왜곡시켜 평가 절하하는 행위가 발생한 것에 대해 심히 우려하는 바이다.

일부 정치인이나 언론에서 조국을 정암에 비유하면서 검찰개혁을 주창했던 조국을 치켜세우기도 하고, 조국 사태를 ‘검찰 쿠데타’로 규정하기도 하고, 조국의 부도덕성을 표현하고자, 정암을 폄하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망발을 쏟아 내고 있다.

한양조(漢陽趙)씨의 정암 후손들은 일련의 행위를 모두 반대한다. 표리부동한 행위로 피의자가 된 조국을 개혁을 위해 목숨까지 버린 정암에 비유하는 것도 격에 맞지 않을뿐더러, 기록으로 남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폄하적 시각으로 정암을 매도하는 행위는 더욱더 용납할 수 없다.

정암은 개혁을 이루기 위해 많은 賢人이 필요해 인재를 모으기 위한 현량과 신설은 당시 시대적 요구였다. 역사적인 사실과 다른 평가를 하는 것은 표현과 착각은 자유이지만, 어느 정도이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개혁 사상가인 정암 趙光祖 선생을 曺國과 같은 동급 인물로 매도했다는 것에 대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분개하고 있다.

정암 선생의 정치개혁은 이미 역사적으로 철저히 검증되어 밝혀졌기에 새삼 언급하지 않거니와 선생께서 지향한 정치개혁은 주자학적 지치주의에 바탕을 둔 정의실현이었으나 그 뜻을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도 이후 선생의 학덕과 개혁 정신을 높이 평가하여 동방 5현(賢)으로 숭배를 받았으며, 성균관 문묘와 전국 향교에 배향되어 고금의 식자들로부터 추앙받고 있다.

정암 선생의 후손인 우리 한양조씨 35만여 종인을 대표하여 한양조씨대종회는, 靜庵 선생의 정치개혁 사상을 작금의 사태와 같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왜곡시키거나 폄하하는 언행을 즉각 중지할 것을 강력히 경고하는 바이다.

한양조씨대종회 개요

한양조(漢陽趙)씨 시조(始祖) 지수(芝壽)의 자손으로서 35만 한양조씨 회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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